헌재, 국회 권한 침해 판단…“대행이라도 임명 의무 있다”
헌법재판소가 27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권과 헌법재판소 구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전원 일치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 대행에게는 법률상 마 후보자를 임명해야 할 의무가 부과됐다.
다만 헌재는 국회가 요구했던 ‘마 후보자를 즉시 재판관 지위에 두는 결정’이나 ‘대행에게 임명을 강제하는 판결’은 각하했다. 권한쟁의심판의 본질상 “국가기관 간 권한 침해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며, 특정 개인에게 곧바로 법적 지위를 부여하거나 임명을 직접 명령할 헌법·법률상 근거가 없다는 이유다.
이번 결정은 국회가 선출한 세 명(정계선·마은혁·조한창) 중 마 후보자만 임명되지 않은 상황을 “국민 대표기관의 합법적 권한을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이 임의로 제한했다”는 취지로 봤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행 권한을 행사하더라도, 국회가 하자 없이 선출한 재판관 후보는 임명돼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임명 보류 배경…‘여야 합의’ 강조했던 권한대행
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국회 선출 절차를 마친 뒤 정계선·조한창 후보자와 함께 헌재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하지만 최 대행은 “마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임명을 보류했다. 이후 정계선·조한창 후보자 두 사람만 재판관으로 임명한 상태가 지속됐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 중 1인만 보류한 것은 국회의 헌재 구성권과 재판관 선출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지난달 3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최 대행 측은 “여야 합의 없는 추천이라 보류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거듭 내세웠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시 임명 vs 신중 검토”…엇갈린 반응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 최 대행이 마 후보자를 당장 임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국회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법조계 일부 인사들은 “헌재 결정은 이미 강제력이 있으며, 국가기관은 헌재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최 대행 측은 당분간 ‘결정문 검토’라는 절차를 거치겠다며 즉각적인 임명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법률적 판단 외에 정무적 판단도 필요한 사안”이라며 “곧 돌아올 한덕수 총리의 복귀 시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진행 상황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정국과 맞물린 헌재 구성 문제
윤석열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헌재의 결정을 “대통령 탄핵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재판관 정원을 억지로 채우려는 하명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국회 본회의 의결도 없이 우원식 의장이 단독으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헌재가 거대 야당을 위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6인 이상이 인용 의견을 내면 탄핵이 확정된다. 현행 헌법재판관 구성은 9인 정원 중 마 후보자가 임명되지 않아 8인 체제로 운영 중인데, 마 후보자까지 임명되어 9인이 되면 결정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집중된다. 헌재는 원칙상 재판관이 교체·추가되면 기존 심리에 대한 변론이 ‘갱신’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실제로는 재판관 전원이 협의해 진행 방식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3인 ‘절차적 흠결’ 지적…그러나 “인용 결론” 동의
헌재 전원은 최 대행의 불임명이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는 점엔 의견 일치를 봤지만, 절차적 하자가 없었다고 본 다수 의견에 대해선 이견이 나왔다. 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우 의장이 본회의 의결도 없이 단독으로 권한쟁의를 제기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별개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 3인도 탄핵심판 등 굵직한 사안이 걸린 상황에서 “국회가 사후적으로 임명 촉구 결의안을 가결해 이 절차적 하자를 보완했다”고 본 대다수 의견에 결론적으로 동의했다. 헌재는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 헌법기관으로서 필요한 대응을 한 것이므로 별도의 본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부적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전망…신속 임명 가능성 vs 추가 보류 시나리오
헌법재판소법은 “헌재가 부작위에 대해 인용 결정을 한 경우, 피청구인은 결정 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처벌 규정이나 강제 집행 수단은 없다.
- 즉각 임명 가능성: “최 대행이 오랜 공직 경험을 고려해 헌법기관의 권위를 존중하고,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 곧바로 마 후보자를 임명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
- 추가 보류 시나리오: 한덕수 총리의 탄핵심판 결과가 헌재에서 기각되면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직에 복귀한다. 그 시점까지 임명을 유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명을 더 지연하면 또 다른 위헌 논란이나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헌재 “구성원칙 준수해야”…정국 변수로 부상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국회가 절차상 하자가 없이 선출한 재판관 후보를 대통령(권한대행)이 선별적으로 임명하지 못한다”는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통령 탄핵심판 등 중대 이슈가 걸려 있어 여야, 청와대(대통령실) 측, 헌재 간 셈법이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이제 공은 최 대행에게 넘어갔다. 헌재 결정에 따른 임명 의무가 명백한 만큼, 최 대행이 이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행할지가 향후 정국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덕수 총리 탄핵심판 기각 가능성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까지 맞물려, 마 후보자 임명 문제는 당분간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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